[오디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4/5/2020) 강론 – 이남웅 스테파노 신부님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오늘은 성지 주일 입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반갑게 환영하던 사람들의 노래 소리는 오늘 우리 안에도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기쁨과 행복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여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곳은 분명 우리가 삶 안에서 느끼는 현세적인 희망과 욕망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환희와 영광의 기쁨 노래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울려 퍼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서 참으로 웃고 기쁠 수 있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과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그분의 사랑이 충실하게 항상 우리를 향해 있는 만큼 우리의 행복과 기쁨도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가 점점 심해 지면서 밖에서 활동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미국이 감염자가 제일 많은 나라가 되어서 더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많은 우리 교우 여러분들이 건강을 잘 지키면서 이 시간들을 무사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내는 요즘 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세계 대유행을 겪으면서 한가지 느끼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어둠’이구나 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바이러스가 나에게 언제 어떻게 전해질지 모른다는 ‘어둠’, 바이러스가 유행하는데도 불구하고 괜찮을 거다라고 생각하며 대처에 소홀하거나 또는 개인의 욕심과 목표를 위해 사태의 심각함을 숨기려 했던 사회의 지도자들의 ‘어둠’, 또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거나 왜곡하여 전하여 국민들이 잘못된 정보 속에서 두려움으로 살게 만드는 여러 메스미디어들이 뿜어내는 ‘어둠’ 등등 입니다. 진실과 현실을 덮는 사람의 거짓과 욕심 그리고 교만이 어쩌면 더욱 지금 이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더 불안하고 두렵고 답답하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도 어둠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낍니다. 하느님 사랑의 빛을 거부하고, 죄와 악이 주는 어둠이 우리의 영혼을 항상 두렵고 불안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의 빛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그리스도의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온다는 진리를 당신의 십자가로 직접 밝혀 주셨습니다. 그 진리의 빛이 이제 당신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더욱 밝게 빛을 내기 시작 합니다. 그것이 오늘 성지 주일부터 이어지는 성주간에 우리가 보고, 만나야 하는 그리스도의 빛 입니다. 오늘 미사에서는 우리가 두 복음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준비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복음에서는 마태오 복음의 예수님의 수난기 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희망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같이 하고자 다짐하며 오늘의 첫 번째 복음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또 그분이 앞으로 겪을 수난의 십자가도 함께 지기 위해 용기와 은총을 청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복음에서 나오듯, 예수님의 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자 그분 주변의 제자들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복음 이야기가 쓰여 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지만, 그분의 제자들도 역시 그 두렵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기엔 나약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수난이 시작되면서 복음 안에 제자들의 모습 중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하는 장면을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큰 두려움 안에서 나약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 하실 때, 환호하던 사람들의 함성과 노래 소리는 이제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에게 채찍질 하는 군사들의 조롱 소리와 예수님이 매맞는 소리 뿐일 것입니다. 또 그분의 손과 발에 박히는 끔찍한 못 소리와 쇠 소리 뿐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던 사람들의 그 기쁨과 희망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정말 그 십자가의 길을 가야한다는 사명감에 불을 질렀을 것입니다. 그분도 “주님! 이 잔을 저에게서 치워 주십시오.” 하며 기도 하시면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 안에서 진정 기뻐하고 또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우리들을 향한 충실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그 환호하던 사람들이 당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지르며, 손가락질을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죄 없이 또 한편으로는 억울한 죄목으로 자기에게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치는 상황 속에서는 사명이나 사랑 따윈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 모든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온 인류를 향한 사랑 때문에 그 고난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예수님께 보낸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은 그간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적들과 좋은 말씀들을 접하면서 사람들 스스로 자기 안에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가졌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그런 강력한 힘을 행하시고 지혜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들어 맞았습니다. 그것이 환호의 함성, 기쁨의 노래가 되어 예루살렘 입성 때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이 그들의 그런 부푼 기대와 큰 희망을 다시 무너뜨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 안에 그 헛된 희망과 기대가 무너져야 진정 하느님 아버지가 보내신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알아 보고,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지를 온전히 볼 수 있게 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분명히 알아보고 만나면서, 사람들은 진정한 구원이 자기들이 범한 죄와 잘못, 그리고 악한 마음과 생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곧,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말씀과 행하신 사랑이 우리의 삶이 되고 믿음이 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죄와 잘못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더 커서 언제든 다시 돌아와 하느님 품에 안기려는 열정과 회개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도록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던 것입니다.

 

오늘 성지 주일을 맞이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깊이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져 보았으면 합니다. 그분에게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무너 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너진 희망과 믿음 위에 하느님께서는 죄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진실된 희망을 다시 새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우리가 사랑의 진리 안에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오십니다. 그분과 함께 이제 성주간을 지내며 더욱 깊이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은총을 청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