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펴라 – 박노해 에세이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토착민들은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 놓습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 동안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 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 지고는 흐뭇해 합니다.
그런데 쌀을 가득 움켜진 원숭이는 아무리 기를 써봐도
그 자루 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놀란 원숭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손을 펴고 쌀을 놓아 버리기만 하면 쉽게 손을 빼내
저 푸른 숲 속을 다시 자유롭게 누비며 살 수 있으련만
원숭이는 한 줌의 쌀을 움켜진 손을 펴지 못한 채
울부짖다가 결국 토착민에게 생포 당하고 마는 것 입니다.

손을 펴라
움켜진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한번 크게 놓아버려라
박노해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수록

어쩌면, 우리 모두 저 원숭이와 같은 사정이 아닐까요?
금방 없어질 쌀 한줌과 목숨을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는 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길을 가기 위해, 내가 움켜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용기 있게 하느님의 생명의 길을 걷기 위해 놓아 보면 좋겠습니다.